투표소로 향하는 길에 한 가지 풍경을 떠올려 보자. 같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파란색을, 다른 사람은 빨간색을 지지한다. 한때 그들은 같은 식탁에서 떡을 떼던 형제였다. 그러나 지금 둘은 서로를 견디지 못한다. 한쪽 눈에 다른 쪽은 나라를 망치는 세력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같은데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가 적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적지 않은 풍경이다. 이런 시대에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조언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중립
유찬호 · 2026-05-31
교계 정치라는 말에는 부정적 어감이 따라붙는다. 총회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 시비, 교단 분열, 자리다툼 같은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는 정치다. 누가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가, 어떤 결의를 채택하는가, 분쟁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 모든 것이 공동체가 함께 결정하는 일이며, 함께 결정하는 일에는 언제나 절차와 권한과 합의가 따른다. 장로교의 치리 구조가 대표적이다. 당회, 노회, 총회로 이어지는 회의체는 한 사람의 독단을 막고 여러 사람의 분별을 모으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종교개혁 이후
이준혁 · 2026-05-31
선거철이 되면 교회는 곤혹스러운 자리에 선다. 강단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는 교회 밖의 일이니 침묵해야 하는가. 한국 교회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오래 흔들려 왔다. 어떤 교회는 강단을 정치 집회처럼 만들었고, 어떤 교회는 모든 사회적 발언을 회피했다. 두 태도 모두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책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교회는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지지하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강단이 특정 진영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복음은 정파의 도구로 좁혀진다. 같은 신앙을 고백
최다은 · 2026-05-31
기독교 교육이라는 말은 흔히 좁게 쓰인다. 주일학교 공과, 성경 암송, 학교 채플. 신앙은 신앙대로 가르치고 지식은 지식대로 가르친다는 구도다. 수학 시간에는 수학을, 성경 시간에는 성경을 다룰 뿐 둘은 평행선처럼 만나지 않는다. 오늘 한국 교회와 기독교 학교가 말없이 받아들인 교육관이 여기에 있다. 이 구도에는 따져보지 않은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신앙을 뺀 나머지 영역은 중립이라는 전제다. 이 전제를 가장 정교하게 다듬은 것은 근대의 세속 교육론이다. 공교육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은 신념과 분리될 수 있
유찬호 · 2026-05-31
자녀에게 신앙을 무엇으로 가르치는가. 많은 부모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주일학교에 맡기면 된다고 여기지만, 정작 가정의 식탁에서 신앙은 좀처럼 입에 오르지 않는다. 교회는 예배에 익숙한 세대를 길러냈으나, 자기 신앙을 말로 설명할 줄 아는 세대를 길러내지는 못했다. 신앙 전수의 위기는 열심의 부족이 아니라 형식의 상실에서 온다. 교회는 이 문제를 수백 년 동안 하나의 형식으로 풀어왔다. 질문하고 답하는 교리문답(catechism)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1542년 요리문답을 펴냈다. 독일 팔츠 지방에서는 1563년 하이델베
정한결 · 2026-05-31
성경을 오래 읽어 온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성경 전체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하나로 꿰는 줄거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많은 신자가 성경의 개별 이야기는 알지만 그 전체가 어떻게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는 답하지 못한다. 이 물음에 명료하게 답해 온 책이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Gospel and Kingdom)다. 골즈워디는 호주의 성공회 신학자로, 성경을 어떻게 한 흐름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평생 천착한 인물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성경
박서연 · 2026-05-31
왜 선하신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부딪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가장 정직하게 답한 책을 찾는다면, C. S. 루이스의 두 권을 함께 권하고 싶다.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와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이다. 한 사람이 쓴 두 책이지만, 두 책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쓰였다. 이 둘을 나란히 읽을 때 비로소 한 진실이 드러난다. 루이스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의 궤적을 알아야 한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무신론자로 자랐다. 옥스퍼드와 케임브
유찬호 · 2026-05-31
개혁주의 신앙의 토대를 알고 싶다는 청년에게 무슨 책을 권할 것인가. 망설임 없이 한 권을 꼽는다면 칼뱅의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다. 이름은 누구나 들어 봤지만 실제로 펼쳐 본 사람은 드문 책이다. 두껍고, 오래되었고, 어렵다는 인상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이 책이 왜 지금도 권할 만한지를 알면 그 인상은 달라진다. 이 책은 칼뱅이 스물여섯 살이던 1536년에 초판이 나왔다. 처음에는 얇은 입문서였으나 칼뱅은 평생에 걸쳐 이를 다듬고 늘려 1559년 최종판에 이르렀다. 흥미로
최다은 · 2026-05-31
많은 교회에서 세례와 입교는 짧은 문답과 함께 치러지는 행사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서약하면 교인의 자격이 주어진다. 절차는 간소하고 준비 기간도 길지 않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배움의 끝에 서는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세례를 받기 전 상당한 기간의 교육 과정을 두었다. 이 과정에 있는 사람을 학습교인(catechumen)이라 불렀고,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교리교육(catechesis)이라 했다. 신앙의 기초를 배우고, 삶이 복음에 맞게 빚어지는지 검증받고, 공
정한결 · 2026-05-31
서점의 영성 코너에는 매년 새로운 메시지가 쏟아진다. 내 안의 신성을 깨우라는 말, 진정한 나를 발견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 긍정의 선포가 현실을 바꾼다는 말이다. 표지는 현대적이고 언어는 세련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교회사의 빛 아래 비추어 보면, 새로워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실은 오래된 오류의 재포장임이 드러난다. 이 진단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시대마다 신앙은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며, 새로운 표현을 무조건 옛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일이야말로 경직된 태도라는 것이다. 이 반론에는 정당한 부분이 있다.
유찬호 ·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