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가 모자란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신뢰하는가
유찬호 기자·기사작성일 : 202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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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동났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지를 다른 곳에서 급히 실어 오고 일부 투표소의 마감 시간을 밤늦게까지 연장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 발길을 돌린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개표가 시작되자 재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즉각 터져 나왔고, 일부 시민은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겠다며 서류를 뒤졌다. 그 장면은 생중계됐다. 이미 깊었던 선거 불신의 바닥에 기름이 부어졌다.
이 사태를 가볍게 볼 수 없다. 국가가 치르는 선거에서 투표지가 모자랐다는 것은 행정의 중대한 실패다. 참정권은 시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한 시간이라도 투표를 막는 일은 그 권리의 침해다. 제도가 무너진 자리에서 의심이 자라는 것은 비합리적 반응이 아니다. 신뢰는 한 번 깨지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시민의 분노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다. 그 분노를 음모론자의 호들갑으로 치부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분별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행정의 실패와 조직적 부정은 같은 말이 아니다. 무능과 음모 사이에는 건너뛸 수 없는 간격이 있다. 투표지가 모자랐다는 사실에서 선거가 조작됐다는 결론으로 단숨에 건너뛰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믿음의 도약이다. 그 도약을 부추기는 것은 대개 진실을 향한 갈망이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거나, 혼란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계산이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과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를 찾아 나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성경은 이 두 위험을 동시에 경계한다. 제9계명은 거짓 증거를 금한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이 계명을 좁게 읽지 않았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제9계명을 풀이하며 거짓말과 비방을 금할 뿐 아니라,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듣지 않은 일로 남을 정죄하지 말며 이웃의 명예를 지키고 진실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 기준은 양쪽 모두를 심판한다. 공적 신뢰를 저버린 행정의 태만도,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퍼뜨리는 광장의 외침도 함께 거짓 증거의 자리에 선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실은 내 편의 승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것이다.
더 깊은 병은 행정의 실패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다. 어느 결과도 승복되지 않고 모든 실패가 음모로 읽히는 사회는 절차가 아니라 영혼이 병든 사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두 도성에 동시에 산다고 보았다. 하나님의 도성과 사람의 도성이다. 사람의 도성은 타락한 인간이 운영하기에 언제나 불완전하다. 선거는 그 불완전한 도성의 절차이지 하나님 나라의 강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람의 도성을 신격화한다. 선거의 승패에 구원의 무게를 싣고, 패배를 종말로 여기며, 그래서 패배를 인정하느니 세계가 조작됐다고 믿기를 택한다. 이것은 정치적 분노가 아니라 정치적 우상숭배다. 우상은 언제나 그것을 섬기는 자를 망친다.
그렇다고 냉소와 체념으로 물러서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도성에 무관심할 수 없다. 정의와 진실은 작은 도성에서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는 위에 있는 권세에 질서 있게 복종하라 하지만, 그 권세 역시 진실 앞에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합법적이고 정직한 방법으로 진상의 규명을 요구한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신으로 말하지 않는다. 광장의 함성에도, 권력의 변명에도 휩쓸리지 않는다. 이 균형은 비겁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충성이다.
교회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는 표의 집계에 달려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보좌는 선출되지 않으며 탄핵되지 않는다. 그분은 신실한 증인이시며 진리 그 자체이시다. 바로 그 사실이 그리스도인을 작은 도성의 진실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에 더 충실하게 만든다. 무너지지 않을 나라의 시민이기에, 무너지는 나라 안에서도 거짓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투표지가 모자란 자리에서 교회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진실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신뢰는 끝내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 물음 앞에서 개혁주의 전통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으로 서야 하는지를 분명히 일러 왔다. 출발점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성경은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어 봇물처럼 인도된다고 말하고, 때와 시기를 바꾸시며 왕을 폐하고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한다. 어떤 개표 결과도, 어떤 행정의 혼란도 그분의 통치 밖에 있지 않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첫째 태도는 평정이다. 이 평정은 사태를 가볍게 여기는 무관심이 아니라, 역사의 키를 쥔 분을 신뢰하는 자의 흔들리지 않음이다. 분노가 판단을 삼키고 공포가 신앙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교회는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로 반응한다.
그러나 평정이 후퇴를 뜻하지는 않는다. 카이퍼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단 한 치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영역은 없다고 했다. 정치 역시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는 정당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치를 우상으로 떠받들지도, 더러운 것으로 회피하지도 않는다. 선거의 승패에 영혼을 걸지 않으면서도, 그 영역의 정직과 정의를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가치는 진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진영에 유리해도 거짓을 옹호하지 않고, 자기 진영에 불리해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진실은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지켜야 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태도와 가치는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난다.
1. 분별: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의혹을 사실처럼 옮기지 않으며, 진상의 규명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와 증거를 통해 요구한다.
2. 합법적 책임 추궁: 행정의 실패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무질서한 분풀이가 아니라 제도와 법이 마련한 길을 통해 진실을 추적한다.
3. 권력을 향한 정직한 진실 말하기: 침묵이 곧 평화가 아니듯, 굴종이 곧 경건은 아니다.
4. 이웃 사랑: 예레미야가 포로된 백성에게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 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자기 편의 승리가 아니라 도성 전체의 안녕을 구한다.
5. 기도: 권세 잡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그들을 무조건 지지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진실과 정의 안에서 다스리도록 하나님께 구하라는 뜻이다.
혼란은 시험이다. 무엇을 믿느냐가 드러나는 시험이고, 누구를 닮았느냐가 드러나는 시험이다. 세상이 의심과 분노로 갈라질 때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증은 정교한 논리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들의 존재 자체다. 거짓이 손쉬운 시대에 거짓을 말하지 않는 공동체, 모두가 자기 편의 승리를 부르짖을 때 진실의 편에 서는 공동체, 그것이 무너지지 않을 나라가 무너지는 도성 한가운데 세워 둔 표지다. 그리스도인은 그 표지로 부름받았다.
글 유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