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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마틴 목사 별세… '한 교회 46년'이 증언한 목회신학

박서연 기자·기사작성일 : 2026-06-07 00:00
알버트 마틴 목사 별세… '한 교회 46년'이 증언한 목회신학

Photo by Mitchell Leach on Unsplash

개혁주의 침례교 설교자 알버트 N. 마틴 목사가 별세했다. 1934년 4월 11일에 태어나 2026년 4월 7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92번째 생일을 며칠 앞둔 때였다. 한 시대를 대표한 설교자의 죽음이지만, 그의 생애가 던지는 질문은 추모보다 무겁다. 마틴은 처음부터 개혁주의자가 아니었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으나 회심은 10대 후반에 이뤄졌다. 1962년 뉴저지 노스캘드웰의 한 기독교선교연합(CMA) 교회 담임으로 부임한 뒤, 성경을 연속 강해하며 은혜의 교리를 발견했다. 어니스트 라이징어를 통해 A.W.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과 존 오웬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있는 죽음의 죽음'을 읽으며, 개혁주의 신앙이 곧 성경적 신앙이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전환점은 1967년이었다. 그가 섬기던 교회는 1689년 침례교 신앙고백을 종속표준(subordinate standard·성경 아래 두는 부차적 기준)으로 채택하고 트리니티침례교회로 재구성됐다. 신앙고백을 성경 위에 올리지 않으면서도, 무신조(無信條)의 모호함에 머물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후의 궤적은 단순하다. 마틴은 이 교회를 46년간 목회했다. 그의 설교는 트리니티 풀핏을 통해 80만 개가 넘는 카세트테이프로 세계에 퍼졌고, 1977년부터 1998년까지 트리니티 사역자 아카데미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쳤다. 그 강의는 세 권짜리 '목회신학'으로 남았다. 신학자 존 머리는 그를 자신이 들어본 가장 유능하고 감동적인 설교자 중 하나로 꼽았다. 여기서 냉정하게 볼 지점이 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 반대다. 세계적 명성과 80만 개의 테이프는 몽빌이라는 한 지역 교회에서, 46년이라는 한 자리에서 나왔다. 오늘의 사역 생태계는 정반대를 보상한다. 플랫폼이 먼저고 교회는 나중이며, 영향력은 이동성과 노출에서 나온다. 마틴은 그 공식을 거슬러 살았다. 그가 즐겨 인용한 명제는 "사역자의 삶이 곧 그의 사역의 삶"이었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라 심판에 가깝다. 강단의 능력과 인격의 거리가 벌어질 때 사역은 무너진다. 추문으로 무너진 목회자의 이름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마틴의 일관성은 예외처럼 보인다. 예외여서는 안 될 것이 예외가 된 현실, 그것이 그의 부고가 드러내는 진짜 뉴스다. 한국 교회는 목회신학의 빈곤을 오래 말해왔다. 강해는 많되 목양은 얕고, 신학교는 지식을 주되 인격을 빚지 못한다는 진단이다. 마틴이 남긴 것은 비결이 아니라 본보기다. 한 본문 앞에서 평생 정직했던 한 사람이다. 그를 기리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애도가 아니라 모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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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연

작성일 :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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