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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리폼드 포스트 — Reformed Post</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link>
    <description>전 세계 개혁주의·복음주의 뉴스·칼럼·기고를 편집국이 선별해 한국어로 전합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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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BuildDate>Sun, 31 May 2026 14:08:37 GMT</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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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청년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떠나는 발걸음 뒤에 놓인 진짜 이유]]></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youth-leaving-church</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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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국 교회의 청년이 줄고 있다. 주일 예배당에서 청년의 자리가 비어 가고, 청년부가 사라진 교회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나 청년이 떠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왜 떠나는가이다. 이유를 잘못 짚으면 처방도 빗나간다.

흔한 진단은 청년의 신앙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세속 문화에 물들고 편안함을 좇다 보니 교회를 등졌다는 설명이다. 이 진단에는 일부 사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떠난 청년들의 목소리를 모아 보면 그림은 더 복잡하다. 많은 경우 그들은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교회에 실망한 것이다. 말과 삶이 다]]></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교계뉴스]]></category>
      <author>최다은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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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기계가 일을 대신하는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young-men-ai-work-calling</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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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I가 앗아 가는 것은 인간의 일자리가 아니다. 인간이 왜 일하는가, 더 깊게는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복음연합(TGC)에 실린 한 고백이 그 단면을 보여 준다. 한 대학생이 한 학기 내내 AI로 과제를 베끼고 수고를 건너뛴 일을 털어놓는다. 편리했고 주변 대부분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이 포기한 것은 한 과목의 성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빚어 가는 수고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학생의 문제도, 한 세대의 문제도 아니다. AI가 과제를 처리하고 코드를 짜고 글을 대신 써 주는 세계에서 사람은]]></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칼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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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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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내부의 오랜 긴장]]></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sovereignty-responsibility-tension</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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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신앙생활을 조금만 깊이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물음에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 내가 기도하고 선택하고 애쓰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이라면, 전도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일은 헛수고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 오래된 긴장은 신학 교과서의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무릎 앞에 놓인 실제 물음이다.

성경은 두 진리를 동시에 가르친다. 한편으로 구원의 모든 단계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그분에 의해 완성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 믿으]]></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박서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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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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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같은 듯 다른 이름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무엇을 부르는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reformed-evangelical-differenc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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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교회 안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우리 교회는 개혁주의라는 말, 저 목사는 복음주의 노선이라는 말,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른다는 말이다. 익숙하게 오가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물으면 답이 흐릿해진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이름들을 들으면서도 그 내용을 붙들지 못한 채 분위기로만 받아들인다. 이름을 안다는 것과 이름이 가리키는 실체를 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먼저 이 구별을 사소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다. 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면 됐지 개혁주의니 복음주의니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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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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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학을 삶으로 옮긴 사람, 우리 곁의 제임스 패커]]></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person-packer-knowing-god</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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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신학자라고 하면 서재에 파묻혀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깊은 신학을 평범한 신자의 손에 쥐여 준 사람이 있다. 영국 출신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다. 그의 이름은 낯설어도 그의 대표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한국 교회에서도 오래 사랑받아 온 책이다. 패커는 깊은 신학과 보통 신자의 삶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었다.

패커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가 학문적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평신도를 위한 글을 평생 썼다는 사실이다. 그는 청교도 신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였다. 17세기 영국 청교도들]]></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최다은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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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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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말씀 강해의 거장, 마틴 로이드존스가 보여 준 설교의 길]]></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person-lloyd-jones-preaching</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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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세기 영국 교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마틴 로이드존스다. 그는 본래 촉망받는 의사였다. 런던의 저명한 병원에서 일하며 의학계의 미래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내려놓았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일보다 영혼을 고치는 일에 부름받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의사 가운을 벗고 강단에 선 이 결단이 영국 복음주의의 한 시대를 열었다.

로이드존스는 1939년부터 약 30년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채플에서 목회했다. 그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해 설교다. 강해 설교란 성경의 한 본문을 깊이 파고들어 그 본문이 ]]></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이준혁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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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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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지성의 회심, 어거스틴이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남긴 것]]></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person-augustine-grac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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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기독교 역사에서 한 사람만 꼽으라면 많은 신학자가 주저 없이 그를 든다. 히포의 어거스틴이다. 4세기에서 5세기를 살아간 이 북아프리카의 신학자는 종교개혁가들이 끊임없이 돌아간 샘이었다. 칼뱅과 루터 모두 자신을 어거스틴의 후예로 여겼다. 개혁주의 신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는 인물이 바로 그다.

어거스틴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삶을 살았고, 진리를 찾아 여러 사상을 전전했다. 한때는 마니교라는 이원론적 종교에 빠졌고, 수사학자로 명성을 좇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그의 영혼을 채]]></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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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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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문제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를 세운 사람이다, 다음세대 사역의 철학을 묻다]]></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next-gen-ministry-crisis</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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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국 교회의 청소년·청년 집회를 둘러싼 논의는 대개 무대 위를 향한다. 음악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조명과 연출이 감정을 조작한다, 찬양이 가벼워졌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과녁을 비껴간다. 무대 위의 현상은 결과일 뿐이다. 진짜 물음은 그 무대를 기획하고 세운 사람에게로 향해야 한다. 그 집회를 설계한 사역자는 무엇을 위해, 어떤 신학적 확신 위에서 그것을 만들었는가. 다음세대 사역의 위기는 문화의 위기가 아니라 그 문화를 다루는 사역자의 철학의 위기다.

먼저 사역자들을 옹호하는 입장의 가장 강한 논리를 들어 보자. 현장]]></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박서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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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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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보내는 교회에서 보냄받는 교회로, 한국 선교의 좌표가 바뀐다]]></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mission-shifting-landscap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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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한국 교회의 선교 지형이 흔들리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 선교사 파송국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파송 인력은 정체되고 고령화되는 한편, 한국 사회 안에서는 도리어 복음을 들어야 할 영역이 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보내는 교회였던 한국이 다시 보냄받아야 할 땅으로 거론되는 역설이다.

수치가 이 흐름을 뒷받침한다. 국내 주요 선교 단체들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파송 선교사 수는 한동안 가파르게 늘다가 근래 증가세가 멈췄고, 신규 헌신자보다 은퇴·귀국 선교사가 많아지는 시점에 다가서고 있다. 정확한 연도별]]></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교계뉴스]]></category>
      <author>이준혁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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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경계가 흐려진 이름의 본래 자리를 찾아서]]></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evangelicalism-identity-recovery</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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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복음주의라는 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리키는 표지이고, 어떤 이에게는 현대적 찬양과 자유로운 예배 형식을 뜻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대형교회의 성장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한 단어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쓰일 때, 그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의 어원은 단순하다.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 곧 복음, 좋은 소식이다. 종교개혁 시기 이 말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맞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가리켰다. 18]]></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박서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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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두 색의 전쟁, 그 끝에서 우리가 잃은 것]]></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election-partisan-idol-church</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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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투표소로 향하는 길에 한 가지 풍경을 떠올려 보자. 같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파란색을, 다른 사람은 빨간색을 지지한다. 한때 그들은 같은 식탁에서 떡을 떼던 형제였다. 그러나 지금 둘은 서로를 견디지 못한다. 한쪽 눈에 다른 쪽은 나라를 망치는 세력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같은데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가 적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적지 않은 풍경이다.

이런 시대에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조언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중립]]></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칼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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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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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교회 안의 정치,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변질인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church-politics-governance</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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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교계 정치라는 말에는 부정적 어감이 따라붙는다. 총회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 시비, 교단 분열, 자리다툼 같은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는 정치다. 누가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가, 어떤 결의를 채택하는가, 분쟁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 모든 것이 공동체가 함께 결정하는 일이며, 함께 결정하는 일에는 언제나 절차와 권한과 합의가 따른다.

장로교의 치리 구조가 대표적이다. 당회, 노회, 총회로 이어지는 회의체는 한 사람의 독단을 막고 여러 사람의 분별을 모으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종교개혁 이후]]></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교계뉴스]]></category>
      <author>이준혁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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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투표소 앞에 선 그리스도인, 신앙은 한 표를 어떻게 던지게 하는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christian-voter-discernment</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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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선거철이 되면 교회는 곤혹스러운 자리에 선다. 강단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는 교회 밖의 일이니 침묵해야 하는가. 한국 교회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오래 흔들려 왔다. 어떤 교회는 강단을 정치 집회처럼 만들었고, 어떤 교회는 모든 사회적 발언을 회피했다. 두 태도 모두 그리스도인의 시민적 책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교회는 어느 정당, 어느 후보를 지지하라고 말하는 기관이 아니다. 강단이 특정 진영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복음은 정파의 도구로 좁혀진다. 같은 신앙을 고백]]></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칼럼]]></category>
      <author>최다은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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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무엇을 가르치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세우는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christian-education-worldview</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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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기독교 교육이라는 말은 흔히 좁게 쓰인다. 주일학교 공과, 성경 암송, 학교 채플. 신앙은 신앙대로 가르치고 지식은 지식대로 가르친다는 구도다. 수학 시간에는 수학을, 성경 시간에는 성경을 다룰 뿐 둘은 평행선처럼 만나지 않는다. 오늘 한국 교회와 기독교 학교가 말없이 받아들인 교육관이 여기에 있다.

이 구도에는 따져보지 않은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신앙을 뺀 나머지 영역은 중립이라는 전제다.

이 전제를 가장 정교하게 다듬은 것은 근대의 세속 교육론이다. 공교육은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야 하며, 사실은 신념과 분리될 수 있]]></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칼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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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교리문답은 낡은 암송이 아니다]]></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catechism-not-memorization</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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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자녀에게 신앙을 무엇으로 가르치는가. 많은 부모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주일학교에 맡기면 된다고 여기지만, 정작 가정의 식탁에서 신앙은 좀처럼 입에 오르지 않는다. 교회는 예배에 익숙한 세대를 길러냈으나, 자기 신앙을 말로 설명할 줄 아는 세대를 길러내지는 못했다. 신앙 전수의 위기는 열심의 부족이 아니라 형식의 상실에서 온다.

교회는 이 문제를 수백 년 동안 하나의 형식으로 풀어왔다. 질문하고 답하는 교리문답(catechism)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1542년 요리문답을 펴냈다. 독일 팔츠 지방에서는 1563년 하이델베]]></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정한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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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DATA[복음을 다시 듣는다는 것,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던지는 질문]]></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book-goldsworthy-gospel-kingdom</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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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성경을 오래 읽어 온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성경 전체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하나로 꿰는 줄거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많은 신자가 성경의 개별 이야기는 알지만 그 전체가 어떻게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는 답하지 못한다. 이 물음에 명료하게 답해 온 책이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Gospel and Kingdom)다.

골즈워디는 호주의 성공회 신학자로, 성경을 어떻게 한 흐름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평생 천착한 인물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성경 ]]></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박서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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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고통의 한복판에서 묻는다, C. S. 루이스의 두 권을 나란히 읽는 법]]></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book-cs-lewis-pain-grief</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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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왜 선하신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부딪치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가장 정직하게 답한 책을 찾는다면, C. S. 루이스의 두 권을 함께 권하고 싶다.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와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이다. 한 사람이 쓴 두 책이지만, 두 책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쓰였다. 이 둘을 나란히 읽을 때 비로소 한 진실이 드러난다.

루이스를 이해하려면 그의 삶의 궤적을 알아야 한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무신론자로 자랐다. 옥스퍼드와 케임브]]></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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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한 권, 기독교 강요를 다시 권하는 이유]]></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book-calvin-institutes</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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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개혁주의 신앙의 토대를 알고 싶다는 청년에게 무슨 책을 권할 것인가. 망설임 없이 한 권을 꼽는다면 칼뱅의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다. 이름은 누구나 들어 봤지만 실제로 펼쳐 본 사람은 드문 책이다. 두껍고, 오래되었고, 어렵다는 인상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이 책이 왜 지금도 권할 만한지를 알면 그 인상은 달라진다.

이 책은 칼뱅이 스물여섯 살이던 1536년에 초판이 나왔다. 처음에는 얇은 입문서였으나 칼뱅은 평생에 걸쳐 이를 다듬고 늘려 1559년 최종판에 이르렀다. 흥미로]]></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도서·인물]]></category>
      <author>최다은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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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세례와 입교는 절차인가 교육인가, 잃어버린 통과의 의미를 되찾다]]></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baptism-confirmation-education</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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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많은 교회에서 세례와 입교는 짧은 문답과 함께 치러지는 행사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서약하면 교인의 자격이 주어진다. 절차는 간소하고 준비 기간도 길지 않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배움의 끝에 서는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세례를 받기 전 상당한 기간의 교육 과정을 두었다. 이 과정에 있는 사람을 학습교인(catechumen)이라 불렀고,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교리교육(catechesis)이라 했다. 신앙의 기초를 배우고, 삶이 복음에 맞게 빚어지는지 검증받고, 공]]></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정한결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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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새로워 보이는 오류의 계보, 시대의 영성은 어디서 왔는가]]></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ancient-heresy-repackaged</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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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서점의 영성 코너에는 매년 새로운 메시지가 쏟아진다. 내 안의 신성을 깨우라는 말, 진정한 나를 발견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 긍정의 선포가 현실을 바꾼다는 말이다. 표지는 현대적이고 언어는 세련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교회사의 빛 아래 비추어 보면, 새로워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실은 오래된 오류의 재포장임이 드러난다.

이 진단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시대마다 신앙은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며, 새로운 표현을 무조건 옛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일이야말로 경직된 태도라는 것이다. 이 반론에는 정당한 부분이 있다.]]></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신학동향]]></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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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AI가 완성한 가장 오래된 우상]]></title>
      <link>https://www.reformedpost.com/articles/2026-05-31/ai-idol-self-reformed-identity</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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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람들은 이제 AI에게 일을 빨리 끝내 달라고만 하지 않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2025년 분석에서, 생성형 AI의 사용처 상위 세 가지는 업무도 생산성도 아니었다. 상담과 동반, 삶의 정리, 그리고 삶의 목적 찾기였다. 도구에게 효율을 구하던 자리에서, 이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복음연합(TGC) 켈러문화변증센터는 최근 "How AI Deepens Our Identity Crisis"에서 이 장면을 정확히 짚었다. 진단은 냉정하다. AI는 인류에게 없던 병을 새로 옮기지 않는다. 현대인이 오래 앓아 온 ]]></description>
      <pubDate>Sun, 31 May 2026 00:00:00 GMT</pubDate>
      <category><![CDATA[칼럼]]></category>
      <author>유찬호 기자</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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