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og barks when his master is attacked. I would be a coward if I saw that God's truth is attacked and yet would remain silent.John Calvin

Coram Deo · Reformed · Evangelical

Reformed Post

헤드라인|청년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떠나는 발걸음 뒤에 놓인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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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동향

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내부의 오랜 긴장
신학동향

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내부의 오랜 긴장

신앙생활을 조금만 깊이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물음에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 내가 기도하고 선택하고 애쓰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이라면, 전도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일은 헛수고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 오래된 긴장은 신학 교과서의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무릎 앞에 놓인 실제 물음이다. 성경은 두 진리를 동시에 가르친다. 한편으로 구원의 모든 단계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그분에 의해 완성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 믿으... [더보기]

박서연 · 2026-05-31

같은 듯 다른 이름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무엇을 부르는가
신학동향

같은 듯 다른 이름들,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무엇을 부르는가

교회 안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우리 교회는 개혁주의라는 말, 저 목사는 복음주의 노선이라는 말,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른다는 말이다. 익숙하게 오가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말들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물으면 답이 흐릿해진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이름들을 들으면서도 그 내용을 붙들지 못한 채 분위기로만 받아들인다. 이름을 안다는 것과 이름이 가리키는 실체를 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먼저 이 구별을 사소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다. 다 같은 그리스도인이면 됐지 개혁주의니 복음주의니 따지는 일이 무슨 의미가... [더보기]

유찬호 · 2026-05-31

문제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를 세운 사람이다, 다음세대 사역의 철학을 묻다
신학동향

문제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를 세운 사람이다, 다음세대 사역의 철학을 묻다

한국 교회의 청소년·청년 집회를 둘러싼 논의는 대개 무대 위를 향한다. 음악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조명과 연출이 감정을 조작한다, 찬양이 가벼워졌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과녁을 비껴간다. 무대 위의 현상은 결과일 뿐이다. 진짜 물음은 그 무대를 기획하고 세운 사람에게로 향해야 한다. 그 집회를 설계한 사역자는 무엇을 위해, 어떤 신학적 확신 위에서 그것을 만들었는가. 다음세대 사역의 위기는 문화의 위기가 아니라 그 문화를 다루는 사역자의 철학의 위기다. 먼저 사역자들을 옹호하는 입장의 가장 강한 논리를 들어 보자. 현장... [더보기]

박서연 · 2026-05-31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경계가 흐려진 이름의 본래 자리를 찾아서
신학동향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경계가 흐려진 이름의 본래 자리를 찾아서

복음주의라는 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리키는 표지이고, 어떤 이에게는 현대적 찬양과 자유로운 예배 형식을 뜻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대형교회의 성장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한 단어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쓰일 때, 그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의 어원은 단순하다.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 곧 복음, 좋은 소식이다. 종교개혁 시기 이 말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맞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가리켰다. 18... [더보기]

박서연 · 2026-05-31

교리문답은 낡은 암송이 아니다
신학동향

교리문답은 낡은 암송이 아니다

자녀에게 신앙을 무엇으로 가르치는가. 많은 부모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주일학교에 맡기면 된다고 여기지만, 정작 가정의 식탁에서 신앙은 좀처럼 입에 오르지 않는다. 교회는 예배에 익숙한 세대를 길러냈으나, 자기 신앙을 말로 설명할 줄 아는 세대를 길러내지는 못했다. 신앙 전수의 위기는 열심의 부족이 아니라 형식의 상실에서 온다. 교회는 이 문제를 수백 년 동안 하나의 형식으로 풀어왔다. 질문하고 답하는 교리문답(catechism)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1542년 요리문답을 펴냈다. 독일 팔츠 지방에서는 1563년 하이델베... [더보기]

정한결 · 2026-05-31

세례와 입교는 절차인가 교육인가, 잃어버린 통과의 의미를 되찾다
신학동향

세례와 입교는 절차인가 교육인가, 잃어버린 통과의 의미를 되찾다

많은 교회에서 세례와 입교는 짧은 문답과 함께 치러지는 행사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서약하면 교인의 자격이 주어진다. 절차는 간소하고 준비 기간도 길지 않다. 그러나 교회 역사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배움의 끝에 서는 일이었다. 초대 교회는 세례를 받기 전 상당한 기간의 교육 과정을 두었다. 이 과정에 있는 사람을 학습교인(catechumen)이라 불렀고,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교리교육(catechesis)이라 했다. 신앙의 기초를 배우고, 삶이 복음에 맞게 빚어지는지 검증받고, 공... [더보기]

정한결 · 2026-05-31

새로워 보이는 오류의 계보, 시대의 영성은 어디서 왔는가
신학동향

새로워 보이는 오류의 계보, 시대의 영성은 어디서 왔는가

서점의 영성 코너에는 매년 새로운 메시지가 쏟아진다. 내 안의 신성을 깨우라는 말, 진정한 나를 발견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 긍정의 선포가 현실을 바꾼다는 말이다. 표지는 현대적이고 언어는 세련되었다. 그러나 그 핵심을 교회사의 빛 아래 비추어 보면, 새로워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실은 오래된 오류의 재포장임이 드러난다. 이 진단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시대마다 신앙은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며, 새로운 표현을 무조건 옛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일이야말로 경직된 태도라는 것이다. 이 반론에는 정당한 부분이 있다.... [더보기]

유찬호 ·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