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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은 낡은 암송이 아니다

정한결 기자·기사작성일 : 2026-05-31 00:00
교리문답은 낡은 암송이 아니다

Photo by Roman Kraft on Unsplash

자녀에게 신앙을 무엇으로 가르치는가. 많은 부모가 이 질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주일학교에 맡기면 된다고 여기지만, 정작 가정의 식탁에서 신앙은 좀처럼 입에 오르지 않는다. 교회는 예배에 익숙한 세대를 길러냈으나, 자기 신앙을 말로 설명할 줄 아는 세대를 길러내지는 못했다. 신앙 전수의 위기는 열심의 부족이 아니라 형식의 상실에서 온다. 교회는 이 문제를 수백 년 동안 하나의 형식으로 풀어왔다. 질문하고 답하는 교리문답(catechism)이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1542년 요리문답을 펴냈다. 독일 팔츠 지방에서는 1563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영국에서는 1647년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이 나왔다. 루터 역시 1529년 소교리문답으로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가정의 언어로 풀었다. 형식은 단순하다. 묻고, 답한다. 그러나 그 단순함 안에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한 줄로 꿰여 있다. 핵심은 그 첫 문항에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교리가 아니라 위로에서 출발한다. 제1문은 묻는다. 사느냐 죽느냐,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답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목적에서 출발한다. 제1문은 묻는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답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는 위로로, 하나는 목적으로 문을 연다. 그러나 두 문답이 가리키는 곳은 같다. 사람은 자기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다는 진리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이 있다. 교리문답은 차가운 정보의 목록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가 "위로"라는 단어로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신앙은 머리로만 외우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누리고 삶으로 사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교리문답은 머리와 마음과 삶을 하나로 묶는 검증된 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답은 현장에 있다. 가정에서는 한 주에 한 문항이면 충분하다. 식탁에서 부모가 묻고 자녀가 답한다. 다음 주에는 부모가 답하고 자녀가 묻는다. 교회 교육에서는 세례·입교(confirmation) 준비를 단순 절차가 아니라 교리교육(catechesis)의 과정으로 회복할 수 있다. 기독교 학교라면 학기의 뼈대로 삼을 만하다. 최근에는 뉴시티 교리문답(New City Catechism)처럼 짧은 문항과 노래와 앱으로 옛 형식을 오늘의 매체에 담아낸 회복 운동도 일어났다. 형식은 새로워도 뿌리는 종교개혁기의 요리문답에 맞닿아 있다. 다만 두 가지 오해를 함께 경계해야 한다. 한쪽은 암송만 시키면 된다고 믿는 율법주의적 접근이다. 외우게는 했으나 이해와 적용을 놓치면, 입술의 신앙만 남는다. 다른 한쪽은 교리문답을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로 치부하는 태도다. 그러면 신앙은 형식 없이 떠다니다 흩어진다. 신앙고백은 성경 위에 있지 않다. 그것은 성경에 종속된 표준(subordinate standard)이며,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은혜를 설명하는 도구다. 이 자리만 분명히 지키면, 교리문답은 신앙의 나침반이 된다. 교리문답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옛것을 향한 향수가 아니다.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일탈인지 가늠하는 분별의 틀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별의 끝에는 언제나 한 분이 계신다. 교리문답의 목적은 문항을 외우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 있다. 잘 외운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누구의 것인지 아는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오래된 형식이 오늘도 살아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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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결

작성일 :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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