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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내부의 오랜 긴장

박서연 기자·기사작성일 : 2026-05-31 00:00
하나님이 다 정하셨다면 나의 선택은 무엇인가, 개혁주의 내부의 오랜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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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조금만 깊이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물음에 걸려 넘어진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미리 정하셨다면, 내가 기도하고 선택하고 애쓰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이라면, 전도하고 결단을 촉구하는 일은 헛수고가 아닌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 오래된 긴장은 신학 교과서의 추상적 논쟁이 아니라 모든 신자의 무릎 앞에 놓인 실제 물음이다. 성경은 두 진리를 동시에 가르친다. 한편으로 구원의 모든 단계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그분에 의해 완성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게 믿으라, 회개하라, 순종하라고 진지하게 명령한다. 성경은 이 둘을 모순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같은 문장 안에서 나란히 놓기도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한 직후,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잇는 식이다(빌 2:12-13). 사람이 이루되 하나님이 이루신다. 개혁주의 안에서도 이 긴장을 다루는 결은 하나가 아니다. 한 입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서 위로를 찾는다. 나의 구원이 변덕스러운 내 결단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작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안식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되, 그 책임마저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로 본다. 다른 입장은 책임의 실재성을 더 힘주어 강조한다. 인간의 선택이 단지 정해진 각본을 읽는 일이라면 명령과 권면의 진정성이 약해진다는 우려다. 이들은 주권을 부정하지 않되, 인간의 응답이 형식이 아니라 참된 행위임을 지키려 한다. 두 입장은 모두 정통 개혁주의 안에 있다. 어느 쪽도 하나님의 주권을 버리지 않고 어느 쪽도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차이는 둘 사이의 강조와 무게에 있다. 이 지점에서 분별이 필요하다. 주권을 강조하다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들면 운명론에 빠지고, 책임을 강조하다 구원의 주도권을 인간에게 넘기면 행위의 공로로 기운다. 정통은 두 절벽 사이의 좁은 길을 걸어왔다. 오래전 한 신학자는 이 둘의 관계를 두 줄의 평행선에 비유했다. 인간의 눈에는 끝내 만나지 않을 듯 보이나, 영원 속에서는 한 점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비유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 긴장이 풀어야 할 모순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신비일 수 있음을 일러 준다. 성경이 둘을 함께 두었다면, 신자도 둘을 함께 붙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 위에서 마음껏 안식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으로 응답하는 것. 그 둘이 충돌하지 않는 자리에 성숙한 신앙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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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연

작성일 :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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