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og barks when his master is attacked. I would be a coward if I saw that God's truth is attacked and yet would remain silent.John Calvin

Coram Deo · Reformed · Evangelical

Reformed Post

헤드라인|청년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떠나는 발걸음 뒤에 놓인 진짜 이유
신학동향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경계가 흐려진 이름의 본래 자리를 찾아서

박서연 기자·기사작성일 : 2026-05-31 00:00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경계가 흐려진 이름의 본래 자리를 찾아서

Photo by Hannah Fleming-Hill on Unsplash

복음주의라는 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특정 정치 성향을 가리키는 표지이고, 어떤 이에게는 현대적 찬양과 자유로운 예배 형식을 뜻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대형교회의 성장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한 단어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쓰일 때, 그 단어의 본래 의미를 다시 묻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의 어원은 단순하다. 헬라어 유앙겔리온(euangelion), 곧 복음, 좋은 소식이다. 종교개혁 시기 이 말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맞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이들을 가리켰다. 18세기 영미권의 신앙 부흥 운동을 거치며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름 그대로 복음을 중심에 둔 신앙, 그것이 복음주의의 출발점이다. 역사가 데이비드 베빙턴은 복음주의를 네 가지 특징으로 정리했다. 회심주의(conversionism), 곧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확신이다. 성경주의(biblicism), 곧 성경에 대한 특별한 강조다. 십자가 중심주의(crucicentrism),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신앙의 핵심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주의(activism), 곧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려는 열심이다. 이 네 가지가 어우러지는 자리에 복음주의의 본질이 있다. 흔히 베빙턴의 사변형(Bebbington quadrilateral)이라 불린다. 이 정의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네 특징 가운데 어느 것도 정치 성향이나 예배 양식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가, 오르간을 쓰는가 밴드를 쓰는가, 교회 규모가 큰가 작은가는 복음주의의 본질과 무관하다. 복음주의는 양식이 아니라 메시지의 이름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그 구원을 증언하는 성경, 그 복음 앞에서 변화되는 삶이 복음주의를 복음주의답게 한다. 오늘 복음주의가 위기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이 그 이름을 차지해 가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복음주의가 특정 정치 진영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복음이 정파의 도구가 되는 순간, 좋은 소식은 어느 한편의 구호로 좁혀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복음주의가 시장의 성공 모델과 결합한다.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 복음의 능력을 대신하면, 십자가의 메시지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다듬어진다. 양쪽 모두 베빙턴이 말한 네 기둥에서 멀어진 자리다. 그렇다면 복음주의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복음주의 안에서도 답은 한 가지로 모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신앙고백과 교리적 명료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모호해진 경계를 다시 그으려면 무엇을 믿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복음주의의 강점이 본래 교파를 넘어선 연합에 있었음을 강조한다. 지나친 경계 긋기가 오히려 복음의 폭을 좁힌다는 우려다. 전자는 정체성의 선명함을 얻으나 분열의 위험을 안고, 후자는 연합의 폭을 얻으나 본질이 흐려질 위험을 안는다. 이 긴장은 복음주의 역사 내내 함께 흘러온 것이다. 한국 교회에 이 물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복음주의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분명하지 않다. 정치적 보수와 복음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시선, 성장 지향의 교회 운영을 복음주의의 본령으로 오해하는 흐름이 공존한다. 이름을 지키는 일은 결국 본질을 지키는 일이다. 복음주의가 자기 이름값을 하려면, 그 이름이 가리키는 단 하나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도, 양식도, 규모도 아닌 복음 그 자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성경이 증언하는 그분, 그 앞에서 변화되어 그 소식을 전하는 삶. 이 중심을 잃으면 복음주의는 빈 이름이 된다. 이 중심을 붙들면 복음주의는 어떤 시대에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의 답은 결국 처음 그 자리, 좋은 소식 그 자체에 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리폼드 포스트에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박서연

작성일 : 2026-05-31

기사제보하기

독자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