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릴리어니어를 사랑하라' 인류 최초 조 단위 자산가 앞에 선 그리스도인
유찬호 기자·기사작성일 : 2026-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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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론 머스크가 기록된 역사상 최초의 트릴리어니어(trillionaire·조 단위 달러 자산가)가 됐다. 이 소식과 함께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T)는 청년 세대 기고자 루크 사이먼의 에세이를 실었다. 제목은 '트릴리어니어를 사랑하라'(Love Thy Trillionaires).
한 조(兆)라는 숫자는 상상을 요구한다. 사이먼에 따르면 이 금액은 미국 연방 세수 총액의 4분의 1에 근접하고, 워런 버핏·빌 게이츠·제프 베이조스의 순자산을 합친 것을 넘어서며, 옥스팜 집계로는 인류의 가난한 하위 46퍼센트가 가진 부의 총합을 초과한다. 이 규모의 돈은 수학을 넘어 도덕적 질문을 강요한다. 트릴리어니어가 되는 것은 잘못인가.
미국 사회는 이 질문에 이미 답을 정해 놓은 듯 보인다. 사이먼은 머스크의 기록 달성 며칠 뒤 뉴욕에서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이 연방 하원 경선에서 승리한 사실을 짚는다. 버니 샌더스는 억만장자들에 맞선 도덕적·정치적 투쟁을 외쳤고, 한 정치인은 미국을 "세계 최초의 트릴리어니어가 더 많은 것에 굶주리는" 동안 아이들이 굶주린 채 잠드는 땅이라고 묘사했다. 사이먼의 진단은 날카롭다. 이것은 단순한 조세 정책 논쟁이 아니라 도덕적 십자군 운동이며, 십자군에는 악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논리의 종착점을 보여주는 사건도 있었다. 2024년 12월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브라이언 톰슨이 맨해튼 길거리에서 살해당했을 때, 많은 미국 청년들이 범인을 민중 영웅으로 만들었다. 케이토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 미국인의 35퍼센트가 부자에 대한 폭력이 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자에 대한 분노가 수사(修辭)를 넘어 폭력의 문턱까지 왔다는 뜻이다.
사이먼이 자기 세대를 향해 쓰는 대목이 이 글의 무게중심이다. 그의 세대는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을 물려받았다. 주거비는 감당하기 어렵고, 학자금 부채는 가정을 이루고 집을 사는 일을 늦춰 왔다. 그리스도인은 이 현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정의와 관대함과 가난한 이들을 깊이 돌봐야 한다. 그러나 고난은 순식간에 질투의 토양이 되고, 성경은 그 질투가 아무리 정당하게 느껴져도 심각하게 다루는 잡초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결정적 문장이 나온다. 원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예수님은 모호하지 않으셨다. 사랑하라. 사이먼의 세대는 트릴리어니어를 원수로 규정했다. 그러나 궁극적 질문은 머스크에게 부유세를 물려야 하느냐가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랑받아 마땅한 한 인간으로 볼 것이냐다.
사이먼은 정직하다. 트릴리어니어가 되는 것이 잘못인지 자신은 확신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은 경제 정책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유보가 부에 대한 성경의 경고를 무디게 하지는 않는다. 예수의 낙타와 바늘구멍 비유는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다. 부는 결코 중립이 아니다. CT가 이 글에 붙인 요약 문장이 양날을 함께 벼린다. 평생을 부자를 경멸하며 보낸다면, 가장 큰 세금은 당신의 영혼에 부과될 것이다.
여기서 글의 논점이 정리된다. 첫째, 부에 대한 성경의 경고를 부자 개인에 대한 미움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트릴리어니어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둘째, 그럼에도 부의 우상됨은 정확히 명명되어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정의를 침묵시키지도, 정의의 이름으로 사랑을 유예하지도 않는 것. 성경적 균형이 여전히 어려운 이유다.
이 에세이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질문도 다르지 않다. 청년 세대의 박탈감은 태평양 이쪽에서도 낯설지 않다. 부동산과 자산 격차 앞에서 분노는 정당해 보이고, 그 분노는 쉽게 사람을 향한다. 교회는 두 가지 유혹 사이에 서 있다. 하나는 부의 문제를 아예 설교하지 않음으로써 맘몬 앞에 침묵하는 유혹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의 분노에 편승해 특정 인간을 악마화하는 유혹이다. 사이먼의 글은 둘 다 복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십자가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같은 자리, 곧 은혜가 필요한 죄인의 자리에 세운다. 거기서만 정의도, 사랑도 제 이름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