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정치,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변질인가
이준혁 기자·기사작성일 : 2026-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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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정치라는 말에는 부정적 어감이 따라붙는다. 총회장 선거를 둘러싼 금품 시비, 교단 분열, 자리다툼 같은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는 정치다. 누가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가, 어떤 결의를 채택하는가, 분쟁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 모든 것이 공동체가 함께 결정하는 일이며, 함께 결정하는 일에는 언제나 절차와 권한과 합의가 따른다.
장로교의 치리 구조가 대표적이다. 당회, 노회, 총회로 이어지는 회의체는 한 사람의 독단을 막고 여러 사람의 분별을 모으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는 교황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한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여러 직분과 회의체로 나누었다. 권한의 분산과 상호 견제라는 점에서, 이는 근대 민주주의보다 앞선 정치 형식이기도 했다. 교회의 정치는 본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본래 목적에서 멀어질 때 발생한다. 회의체가 진리를 분별하는 자리가 아니라 세력을 다투는 자리로 바뀔 때다. 직분이 섬김의 자리가 아니라 차지할 자리가 될 때다. 결의가 말씀에 비추어 옳은가를 묻는 대신 어느 편이 더 많은 표를 모았는가로 결정될 때다. 한국 교회가 겪어온 교단 분열과 총회 선거 잡음의 상당수가 여기에 뿌리를 둔다. 정치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다.
여기서 두 입장이 갈린다. 한쪽은 교회에 정치는 없어야 한다고 본다. 영적 공동체에 권력 다툼은 어울리지 않으며, 모든 결정은 기도와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쪽은 교회의 정치 구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절차와 회의체야말로 교회를 무질서와 독재로부터 지키는 성경적 장치라는 것이다. 전자는 정치의 타락을 경계하나 무질서와 카리스마적 독주의 위험을 가볍게 본다. 후자는 질서의 가치를 강조하나 절차가 목적을 가릴 위험을 안고 있다.
개혁교회의 전통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왔다. 회의체와 절차는 필요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의 시행과 권징이라는 교회의 표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교회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도구가 목적을 삼키는 순간, 교회 정치는 세속 정치와 구별되지 않는다.
한국 교계가 마주한 과제는 정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정치를 정치답게, 곧 교회를 섬기는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다. 선거의 투명성, 권한의 분산, 분쟁 처리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동시에 절차가 진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다수결로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 표의 많고 적음이 말씀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 정치의 건강함은 화려한 통합이나 잡음 없는 만장일치로 측정되지 않는다. 이견이 정당한 절차 안에서 다뤄지는가, 권한을 가진 자가 그 권한을 섬김으로 쓰는가, 모든 결정이 결국 누구의 영광을 향하는가로 측정된다. 정치 자체를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부끄러워할 것은 그 정치가 섬겨야 할 분을 잊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