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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AI가 완성한 가장 오래된 우상

유찬호 기자·기사작성일 : 2026-05-31 00:00
AI가 완성한 가장 오래된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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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AI에게 일을 빨리 끝내 달라고만 하지 않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2025년 분석에서, 생성형 AI의 사용처 상위 세 가지는 업무도 생산성도 아니었다. 상담과 동반, 삶의 정리, 그리고 삶의 목적 찾기였다. 도구에게 효율을 구하던 자리에서, 이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묻는다. 내가 누구냐고. 복음연합(TGC) 켈러문화변증센터는 최근 "How AI Deepens Our Identity Crisis"에서 이 장면을 정확히 짚었다. 진단은 냉정하다. AI는 인류에게 없던 병을 새로 옮기지 않는다. 현대인이 오래 앓아 온 정체성의 병을 악화시킬 뿐이다. 그 병의 이름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자아다. 현대 문화는 정체성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라 가르친다. 가정도, 전통도, 신앙도 더는 나를 규정하지 못한다. 오직 내가 나를 규정한다. 그러나 이 자유에는 함정이 있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가 지적했듯, 정체성은 내면에서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을 거쳐야 비로소 확인된다. 그래서 현대인은 모순을 안고 산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우라 배우면서도, 끝없이 승인을 갈구한다. 자율을 외칠수록 인정에 더 굶주린다. AI는 이 굶주림을 정확히 겨눈다. 소셜미디어가 나를 받아 줄 청중을 찾아 주는 도구였다면, AI는 나만을 위한 청중을 직접 만들어 낸다. 늘 깨어 있고, 결코 반박하지 않으며, 원하는 말을 원하는 순간에 건넨다. 완벽한 거울이다. 문제는 거울이 사람을 살리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더 은밀한 위협은 AI가 특정한 가치를 중립의 얼굴로 주입한다는 사실이다. 편향이 객관의 가면을 쓰는 순간, 그것은 반박할 수 없는 권위가 된다. 내가 스스로 골랐다고 믿는 취향과, 알고리즘이 길들인 취향을 구분할 길이 사라질 뿐이다. 결국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닌 신학의 문제다. 스스로 자아를 빚으려는 욕망에는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기원은 창세기 3장이 아니던가. 하나님이 주신 정체성을 거부하고, 손수 따 먹고 무언가가 되려 했던 그 선택. AI는 새로운 우상을 발명하지 않았다. 인간이 에덴에서 처음 세운 우상, 곧 "내가 나를 만든다"는 우상을 기술의 힘으로 완성했을 뿐이다. 개혁신앙이 이 시대의 청년에게 절실한 이유가 여기 있다. 종교개혁이 다시 꺼내 든 진리는 값없이 받는 은혜였다. 칭의는 성취가 아니라 선물이고, 하나님의 자녀 됨은 자격이 아니라 입양이다. 정체성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복음의 선언은, AI가 착취하는 바로 그 허기의 한복판을 꿰뚫는 날카로운 검이다.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성과가 충분해야 정죄가 면해지는 것이 아니다. 판결은 이미 끝났고, 그 근거는 나의 수행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일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 답 그대로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좋아요 숫자로 환산되지 않고, 플랫폼 바깥에서 주어지며, 내 손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내 손에서 잃을 수도 없는 자아다. 한국 교회는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세대, 청년에게 무엇을 쥐여 주고 있는가. 진로와 스펙, 위로와 동기부여 너머, "너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복음으로 답해 주고 있는가. AI는 청년에게 하루 종일 포장된 거짓 진리를 건넬 것이다. 교회가 그보다 값싼 위로를 들고 그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패착이다. 교회가 줄 수 있고 알고리즘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단 하나는 이것이다. 너는 지어졌고,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며, 그럼에도 사랑받는다는 선언. 인간의 형상을 인간에 대해 학습하는 알고리즘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빚으신 분에게서 찾을 것인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 받은 자아는 만든 자아보다 견고하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만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우리가 받은 것에는 끝내 손대지 못한다. 아마도 그 빼앗을 수 없는 것을 날마다 증명하고 싶어 이 데일리리폼드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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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호

작성일 : 202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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